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인물 (문단 편집) == 시대의 증언자 == *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3 SS 토텐코프 소속이자 폭풍 속의 씨앗의 저자. 출판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긍정적이진 않지만 부정적이지도 않으나 회고록인 폭풍 속의 씨앗 자체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당시의 전황을 잘 묘사했지만 악명 높은 3 SS 토텐코프 사단 옹호 등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편이라 가려들을 필요가 있다. * [[귄터 그라스]] 전후 독일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양철북의 작가. 일설에는 유겐트에서 친나치 발언만 좀 했다고 하지만, [[http://ja.wikipedia.org/wiki/%E3%82%AE%E3%83%A5%E3%83%B3%E3%82%BF%E3%83%BC%E3%83%BB%E3%82%B0%E3%83%A9%E3%82%B9|미국 문서에서도 확인된 마당에 과연...]] 공군에 징집되었다가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17세 시절에 멋모르고 한 일이라서 1990년대에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주 큰 파장은 없었다. 참고로 SS는 원칙상 자원입대에 복무기간도 국방군보다 배는 더 길지만 예외없는 원칙은 없다고, 친위대도 병력이 부족하면 국방군에게서 병력을 넘겨받기도 했다. 무장친위대 군복의 좌완에서 가끔 보이는 V자가 3개 겹쳐진 표식이 바로 국방군이 친위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부여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라스가 소속된 부대가 1945년의 심각한 병력 부족의 상황 하에서도 최우선으로 재편되었던 제10 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의 기갑부대인 것 등을 보면, 국방군에서 징집한 인원이 친위대로 넘어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렇게 강제 징집된 국방군 출신들은 나중에나마 SS 취급을 면하기도 했다. * [[위르겐 기르겐존]] (1924년 8월 21일 - 2007년 7월 24일) 5 SS 비킹 사단 소속의 병장.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를 말한 주인공. 무장친위대 소속 중 몇 안 되는 진심으로 뉘우친 인물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신이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나치와 무장친위대의 전쟁범죄를 고백하기도 했으며. 전후에는 사민당원으로 활동하였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아내의 동생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Jürgen이라는 동명이인이라서 생긴 오해인 듯하다. *[[한스 폰 루크]] 독일 국방군 제 21 기갑사단 소속의 대령이자 전쟁사학자,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저자. 항목 참고. * [[알프레드 체크]] 히틀러와 악수를 한 그 아이다. * [[기 사예르]] 독일계 프랑스인으로 어머니가 독일인이다. 대독일 사단에서 복무했으며 최종 계급은 상병이다. * [[http://www.auraknihy.sk/images/stories/virtuemart/product/byl-jsem-mengeleho-asistentem---miklos-nyiszli.jpg|니슬리 미클로시 ]](Miklós Nyiszli) (1901년 6월 17일 - 1956년 5월 5일) 유대인 출신. 그 유명한 [[요제프 멩겔레]]의 조수로 유대인 감별과 실험을 도왔으며 머리까지 좋아서 법의학이나 [[독일어]]와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심지어 웬만한 [[사투리]]까지 다 알 정도로) 마스터한 천재였다. 이 때문에 [[한니발 렉터]]의 모델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다만 이 위키에서는 굉장히 나쁜 편으로 이야기 되는데 논란이 좀 있는 인물이다. 이 위키에서는 니슬리가 가스실에서 어느 여자아이가 살아남자 그대로 끌고 가서 해부해 버린 쓰레기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와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가 있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1/04/15/20110415002842.html|이 자료나]] [[https://en.wikipedia.org/wiki/Mikl%C3%B3s_Nyiszli|영어 위키백과]]를 보면 어느 날 가스실에서 시체를 치우고 있는데 사후 강직 현상으로 가느다란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은 시체더미 아래 밑바닥에서, 열여섯 살 소녀가 산 채로 발견되자 니슬리는 반사적으로 어린 소녀에게 낡은 코트를 덮어주고 따뜻한 수프와 차를 주었으며 어깨와 등을 마사지해 주었고, 니슬리는 집단수용소 지휘관에게 수용소에서 일하는 독일 여자들 틈에 소녀를 숨겨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으며, 게다가 니슬리는 1944년 6월에 아우슈비츠에 끌려왔기 때문에 악행을 저질렀다는 시간도 굉장히 짧은 편이다. 게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딸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왔고 [[요제프 멩겔레]]가 자신의 실험을 도와주지 않으면 니슬리와 아내 그리고 딸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하다시피해서 니슬리는 멩겔레의 실험을 강제로 할 수 밖에 없었고 멩겔레가 시켜서 수십 차례에 걸쳐서 피해자들을 생체실험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죽기 전에 정확한 임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조사하고 그들의 아직 따뜻한 몸을 절개하는 것을 수행했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는 멩겔레가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 버리자 자신과 아내 그리고 딸은 다른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해방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고 전후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증언했으며 Auschwitz: A Doctor’s Eyewitness Account. 라는 책을 쓰면서 멩겔레의 실험이나 나치의 생체실험을 증언하는 자료를 냈다고 한다. 물론 저 주장이나 이야기가 니슬리의 거짓된 증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무조건 나쁘다고 주장하는 견해에는 굉장히 무리가 있고 여러모로 논란이 있는 사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